퍼포먼스 마케팅 일본 취업 下 대기업 글로벌 마케팅팀 퇴사

퍼포먼스 마케팅으로 일본 취업

한국에서의 커리어도 외국계 뿐이었던 내가 일본에서 로컬 대기업을 다니는 것. 뭔가 농도짙게 이 나라의 직장 문화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설렘 반 두려움 반.

비자가 발급되고 약 10장 이상의 신상정보 엑셀파일 입력 계약서 등을 제출하고 나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신상정보를 입력해서 제출하라는 파일의 가지수부터 온갖 잠금설정으로 복사/붙여넣기조차 되지 않는 보기만해도 머리아픈 엑셀화면에 한자와 히라가나, 카타카나를 하나하나 입력해 넣었다.

정말 시작부터 이게 맞아? 싶은 느낌

출근 약 일주일 정도 전에 집으로 노트북과 업무용 아이폰이 배송왔다. 노트북은 생전 처음보는 파나소닉 그런데 웬걸, 너무 가벼워서 행복함.

그냥 딱 봐도 별로 밖에서 펴놓고 일하고 싶지 않은 투박한 디자인인데 거의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가벼워서 들고다닐 맛은 난다.

 

 

로컬 대기업 입사 초기

첫날, 출근을 했는데 같은 팀의 동료가 정문까지 나와 사무실 층까지 안내해주었다. 글로벌 본사답게 30층 이상의 큰 건물 전체가 그룹사 건물이었고 사무실 인테리어도 꽤나 프리미엄 가구들을 놓아두고 모던한 분위기로 장식해두었다.

거의 3개월 간은 연수생 느낌.

브랜드에 대해,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 비전과 가치 등 사실 한국에서 브랜드 로컬 마케팅을 하면서는 본격적으로 배우거나 경험해보지 못했던 브랜드의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들을 본사에서는 더 깊게 이해하고 시작하는구나 를 느꼈던 몇 달.

마케팅 경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글로벌 마케팅을 접하기 시작하니 접근부터가 색달랐고 심지어 일본의 역사와 함께한 긴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였기 때문에그 히스토리에 대한 깊은 이해는 브랜딩을 하는 사람으로서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로컬에서 경험했던 마케팅을 카테고리화 해보자면제품 마케팅, 트레이드 마케팅, 컨수머 마케팅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지만 글로벌 본사의 마케팅은 좀 더 브랜드 마케팅, 스토리텔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일과밀접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브랜드에서,새로운 관점과 접근방식을 가지고 또 하나의 프레임 워크를 만들어나가는 것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일본 대기업 본사 문화

컬쳐에 대해 내가 느낀 것은 (물론 일본에서도 블랙기업이 많다고 하고, 회사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사람 스트레스

1. 사람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제로는 아니지만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일본 사람들의 겉과 속이 다르다고 많이들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점이 너무 편하고 좋았다.

일은 일일 뿐이기 때문에, 그걸로 감정이 상하면서까지 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적어도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겉으로는 최대한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해주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있어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디테일한 매뉴얼

2. 대부분의 프로세스에 대해 매뉴얼이 매우 디테일해서, 매뉴얼을 만들고 사람들을 훈련시키는데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이 부분은 한국인의 입장에선 조금 시간과 리소스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긴 하지만 국민성이겠거니 한다.

그래서 뭘 물어보면 몇 십장의 매뉴얼 파일을 찾아서 공유해주는데 그게 전부 빼곡한 일본어이거나 영어여서 나로서는 캐치업하기가 정말 귀찮고 번거로울 때가 많다.

 

가족이 우선

3. 가족이 우선시되는 환경이다. 우리나라도 출산율, 일과 가정이 양립 등의 부분이 많이 이슈가 되고 있지만 확실히 한국에서 내가 느꼈던 부담과 밸런스와는 많이 다르다.

가족과 사생활이 무조건 우선순위이다.

가족, 특히 자녀가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케어가 필요하다면 그 날은 무조건 재택을 할 수 있고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재택하거나 바로 쉴 수 있으며 일을 하다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지거나 번 아웃으로 버티기 힘들땐 계약된 의사의 처방하에 장기휴가를 쓸 수 있다. 심지어 유급으로도 가능하다.

그리고 어린 아이가 있으면 단축근무를 하는 것도 자유롭게 설정가능하다. 이 부분에 대해 아무도 부정적인 내색이나 평가를 하지 않고, 그들의 업무 스타일에 따라 미팅을 세팅하고 업무를 배려해준다.

오히려 장려하고,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커리어를 지속하면서 아이를 언제 낳을지, 낳아도 좋을지에 대해 크게 걱정을 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단 크게 느낀 점은 요 정도. 벌써 2년이 되어 가기 때문에, 그 외에도 여러가지 장 단점들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장점을 더 많이 느낀다.

단점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보수적이고, 프로세스가 많고, 너무 여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전하게 진행을 시키려 하기 때문에 좀 늦고 가끔은 복잡해지기도 한다는 점.

한국 대기업은 안다녀봐서 모르지만 어쩌면 일본만의 특징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로컬 대기업에서 1~3년

글로벌 마케팅 팀에서의 첫 1년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적응기였다. 일본 직장문화, 커뮤니케이션, 분위기, 말투까지 모든 것들을 배워가고 익숙해지는 시기였고, 일 또한 3명이 하나의 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었던지라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우리 팀 멤버들은 럭키하게도 인격도, 일도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가느라 개인적으로 속에서는 허둥거리며 좌절도 많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겉으로 보기엔 스무즈 했던 1년이 지나가고 2년차부터는 홀로 큰 프로젝트를 리드하게 되었다.

일본어도 이제 나름은 로지컬하게 생각도 동시에 해 나갈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사람들과도 많이 친해져서 여러 부서들과의 협업에도 큰 무리가 없었다.

 

리더십의 혼란, 조직의 붕괴

그런데 2년 차부터 이 조직의 리더십이 하나 둘 바뀌더니 처음엔 100% 일본인이었던 리더십들이 거의 80% 외국인들로 바뀌었다.

물론 나도 외국인 1인이지만, 실무자가 외국인인 것과 리더십이 거의 대부분 외국인으로 바뀌는 것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불러왔다.

일단 대부분의 보고와 논의가 영어로 이루어졌고 (이 부분을 일본인 동료들은 꽤나 힘들어했다.) 브랜드가 나아가는 방향에서 그동안의 오랜 역사동안 정착되어 있던 스토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나마도 변화를 하는 부분에 있어, 무엇이 비전인지 디렉션인지, 무엇을 타겟으로 하는지 그 어느것도 명확하게 아래로 전달되지 않은채 반년 이상을 끝없는 논의와 변경과 승인받은 것의 뒤엎기 등등 리더십에서의 혼란은 조직의 혼란으로 이어지는 듯 했다.

그 속에서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회사 내에서 거의 두번째로 큰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나는 그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새로운 리더십들은 프로젝트 초반 이전의 리더십들과 한 모든 승인, 협의사항들은 모두 다 엎어졌고, 새로운 방향으로 다 뒤집어 엎길 원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직속 상사의 수개월 병가로 담당자 포지션인 내가 여러 부서의 VP들과 임원들에게까지 직접 보고를 하고 논의를 하고 그들의 통일되지 않은 중구난방의 피드백들을 다 받아내고 쳐내야 했다는 것

 

퇴사 결심과 리프레시

내가 이 일련의 상황에서 느낀 건 이런 큰 대기업 본사 조직에서 리더십들은 담당자인 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밈에서 자주 회자되듯 소위 ‘꼰대’들처럼 단 한사람도 귀기울여 그 동안의 의사결정의 콘텍스트와 의도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걸 질문을 했으면서도, 정확하게 듣지 않고, 본인들의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어느 정도의 파워밸런스가 필요했다. 이런 스타일의 리더십들 속에서는 담당자인 나 혼자 떠들어봤자 아무런 파워가 없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조직의 단계단계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직속 상사가 공석이었던 나에겐 현재로서 불가항력적인 밸런스였던 것 같다.

의외로 VP이상의 높은 자리에 간 리더십들이 담당자인 나를 격려하기 위해 하는 제스처들이 너무 스마트하지 않았다.

‘너는 이미 시니어야. 그러니 잘 컨트롤해 나갈거라 믿어. 잘 하고 있어, 우린 한 팀이니 곤란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회사의 직급 그레이드와 컴펜세이션을 기준으로 나는 명확히 ‘주니어’다. 이런 언급들이 꽤나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그냥 정말 심플하게 좋은 말을 해주고, 칭찬을 해 주면 서포트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담당자들은, 매니지먼트로서 리더십들이 나서서 이슈를 해결해주길 원한다. 담당자에겐 힘든 일이어도 리더십들의 파워로는 은근히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많다.

이런 리더십에서 느끼는 네거티브한 상황들을 비롯해 조직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각 팀의 역할이 정말 모호하게 설정이 되어 있고, 그걸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없다는 것.

그 모든 상황들이 내가 더 이상 이 조직에 있고 싶은 마음을 모두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또한 담당자로서 아무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너무 굳어져 있던 하이어라키, 리더십의 변화로 약 1년 간 해왔던 모든 업무가 다 무가치하게 되어버린 결과 등 특히 마케터로서 내가 여기에서 더 성장할 수 있는지, 나 답게 일을 하고 즐거울 수 있는지에 대해

‘NO’ 라고 생각했다.

나 뿐 아니라 조직의 여러 사람들이 멘탈 리프레쉬 휴가에 들어간다던지, 퇴사하거나 이직을 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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